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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救度衆生             2010-02-27 00:42:05                    ( 1151 ) hits
 


[9평 중 5평】장쩌민과 중공(中共)이 서로 이용하여 파룬궁을 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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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장푸전(張付珍)은, 약 38세의 여자로 원래 산둥성(山東省) 핑두시(平度市) 센허(現河) 공원 직원이었다. 그녀는 2000년 11월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베이징에 갔다가 납치당했다. 내막을 아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공안(公安)은 강제로 장푸전의 옷을 벗기고 머리를 밀었으며, 그녀를 학대하고 모욕하였다. 「大」자 형으로 침대에 묶어놓은 후, 대소변을 몽땅 침대에서 보게 하였다. 그런 후, 공안은 강제로 이름 모를 독약주사를 놓았다. 주사를 맞은 후, 장푸전은 극도의 고통을 느꼈으며 마치 미친 사람과 같았고 고통스럽게 발버둥치다가 세상을 떠났다. ‘610’직원들이 모든 과정을 현장에서 참관하였다(명혜망 2004년 5월 31일).

양리룽(楊麗榮)은, 34세의 여자로 허베이성(河北省) 바오딩(保定) 지역 딩저우시(定州市) 베이먼가(北門街) 사람이다.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경찰은 늘 그녀의 가족들을 괴롭히고 협박하였다. 2002년 2월 8일 밤, 경찰이 떠나간 후, 계량국(計量局) 운전수였던 남편은 해고될까 두렵기도 하고 경찰의 위협을 감당할 수 없어서 이튿날 새벽,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신 사이에, 아내의 목을 졸랐다. 양리룽은 이렇게 10살 난 아들을 남겨두고 처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남편은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현장에 도착한 후, 아직도 체온이 남아있는 양리룽을 해부하고는 많은 장기들을 가져갔다. 내장을 꺼낼 때 아직도 뜨거운 기운이 남아 있었으며 선혈이 줄줄 흘러내렸다. 바오딩시 공안국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이게 어디 죽은 사람을 해부하는 것인가, 원래 산 사람을 해부한 것이었구나!”(명혜망 2004년 9월 22일)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완자(萬家) 노동교양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임신 6~7개월 된 한 임신부가 두 손이 강제로 대들보에 묶인 채, 온 몸이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대들보는 땅에서 3미터 정도 높이에 있었는데, 굵은 밧줄의 한 끝은 대들보의 도르래에 있었고, 다른 한쪽 끝은 악경(惡警)의 손에 있었다. 악경이 손을 잡아당기면 매달린 사람은 허공에 둥둥 떴고, 손을 놓으면 급속히 아래로 떨어졌다. 이 임신부는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시달리다가 결국 유산하였다. 더욱 잔인한 것은, 그녀의 남편더러 옆에서 아내가 고문당하는 장면을 보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명혜망 2004년 11월 15일 완자 노동교양소에서 100일이 넘도록 고문을 당한 왕위즈(王玉志)여사와의 인터뷰)

보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이런 참혹한 사건들이 지금 중국에서 박해받는 파룬궁 수련생들의 신변에서 발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더욱 놀라운 사실은 5년이 넘게 지속된 박해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참혹한 사건들에 비하면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공산당은 국제 사회에서 정면(正面)적이며 문명화된 형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파룬궁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비이성적 박해는 그 광범위함, 심각성, 잔인한 수단 때문에 국제사회에 다시 한번 중국 공산당의 진실한 일면을 폭로하였으며, 중공 최대의 인권 문제로 부각되었다. 사람들은 이 모든 책임이 중국 경찰의 자질이 낮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미루는데 습관이 되어 중국 공산당은 좋아지고 있으며 진보하고 있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이고도 체계적인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는, 사람들의 환상을 철저히 깨뜨려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처럼 피비린내 나는 황당한 박해가 중국에서 발생할 수 있었는지 사고하기 시작하였다. 20년 전에 문화대혁명의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아 정상(正常)을 회복’한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오늘 또 다시 사악한 역사의 순환에 빠져 들어갔는가? ‘진선인(眞善忍)’을 원칙으로 하는 파룬궁은 세계 60여 개 국가에서 널리 전해지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오직 중국에서만 박해를 받고 있는가? 이 박해 속에서 장쩌민과 중국 공산당은 도대체 어떤 관계인가?

장쩌민은 무덕(無德)하고 무능(無能)하다. 만약 중국 공산당이라는 정교하고 정확하며 전문적으로 살인과 거짓을 일삼는 폭력기계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는 절대로 전(全) 중국, 심지어 해외에까지 파급된 집단학살을 발동할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중국 공산당에 장쩌민과 같은 고집불통의 사악한 독재자가 없었다면, 중국 공산당은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장쩌민과 공산당이라는 사악한 영(靈)이 서로 호응하고 공명하여, 마치 눈 덮인 산에서 등반객의 목소리와 적설(積雪)이 공진(共振)하여 눈사태라는 재난(災難)이 발생하는 것처럼, 장쩌민과 중국 공산당은 서로를 이용하여 역사상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한 탄압을 확대시켜 나갔다.


유사한 과거사, 동일한 위기감

장쩌민은 1926년에 태어났다. 중국 공산당이 줄곧 인민들에게 피비린내 나는 과거사『發家史』를 속인 것처럼, 장쩌민도 줄곧 중국 공산당과 인민들에게 자신의 매국노『漢奸』 역사를 은폐하였다.

장쩌민이 17세 되던 해, 세계 반(反)파쇼 전쟁은 이미 불같이 타올랐다. 애국청년들이 잇달아 전선으로 달려 나가 항일구국운동에 참여할 때, 장쩌민은 도리어 왕징웨이(汪精韋) 괴뢰정부가 1942년 난징(南京)에 설립한 중앙(中央)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여러 방면의 조사에 의하면, 이런 것들은 일본이 장쑤(江蘇)를 점령했을 때, 장쩌민의 생부(生父)인 장스쥔(江士俊)이 일본군의 반중(反中) 선전기구 고위관리로서 진정한 매국노였던 것과 관계가 있다.

나라를 팔아먹고 일본의 노예가 되었다는 점에서, 장쩌민과 중국 공산당은 동일한 전철을 밟았다. 그들은 중국 인민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여 아무런 거리낌없이 중국 인민을 도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장쩌민은 출세를 위하여 중국 공산당에 섞여 들어갔다. 나중에 숙부인 장상칭(江上靑)이 공산당에 가입했다가 토비(土匪)들이 난사한 총에 맞아 숨지자, 이 관계를 이용하여 자신은 일찍이 숙부에게 양자로 보내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리하여 몇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처장(處長)급 간부에서 전자공업부 부부장(副部長)으로 승진하였다.

알다시피 장쩌민의 승진은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이용해 권세에 빌붙은 것이다. 장쩌민이 상하이시(上海市) 위원회 공산당 서기로 있던 기간에, 매년 상하이에 와서 구정을 보내던 리센녠(李先念), 천윈(陣雲) 등 공산당 원로들에게 아첨하는 장기를 보여주었다. 일찍이 리센녠에게 생일 축하떡을 보내기 위하여, 상하이 시위원회 서기라는 신분으로, 대설(大雪)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동안 밖에 서서 리센녠을 공손히 기다린 적도 있었다.

1989년의 ‘6.4’ 천안문 학살사건『屠城』은 장쩌민의 생애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그는 바른 목소리를 내던『세계경제도보(世界經濟導報)』를 폭력으로 탄압하고, 중국 인민들에게 신망이 높던 인민대(人民大) 위원장 완리(萬里)를 연금(軟禁)시켰으며 ‘6·4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여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되었다. 학살 직전, 장쩌민은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비밀편지를 보내, ‘과감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면서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도 망하고 나라도 망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89년 정권을 잡은 이후 15년 동안, 장은 ‘안정이 일체를 압도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일체 인사와 독립적인 신앙단체들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과 학살을 자행하였다.

중국과 러시아 쌍방은 1991년부터 국경을 확정짓기 시작했는데, 장쩌민은 제정(帝政) 러시아와 구(舊) 소련의 중국에 대한 침략을 전면적으로 승인하였다. 즉, 『아이훈조약(愛琿條約)』에서부터 시작된 모든 중국과 러시아 간의 불평등 조약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팔아먹은 중국 영토는 백여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 여기서 장쩌민의 경력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1) 매국노의 장자(長子)로 태어나 열사(烈士)의 고아를 사칭하여 공산당의 ‘속일 편(偏)’자 비결을 직접 실천하였다.
2) 6.4 학살을 지지하고 민주화 운동 인사와 신앙인들을 탄압하여, 공산당의 ‘죽일 살(殺)’자 비결을 직접 실천하였다.
3) 중국 공산당이 일찍이 코민테른 극동지부로서 곳곳에서 소련의 명령을 들은 것처럼, 장쩌민도 무상으로 러시아에 국토를 헌납하여 공산당의 ‘팔 매(賣)’자 비결을 직접 실천하였다.

이와 같이 장쩌민과 중국 공산당은 모두 부끄러운 과거사가 있었기에, 양자 모두 필연적으로 권력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장쩌민과 중공이 ‘진선인(眞善忍)’을 두려워함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역사는 1억이 넘는 사람들의 피로 씌어졌다. 거의 모든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모두 스탈린식의 숙청이 있었다. 무고한 사람들을 함부로 죽였는데 걸핏하면 백만, 천만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에서 급격한 변화가 발생한 후, 공산진영은 하룻밤 사이에 강산의 절반을 잃어버렸다. 중공이 여기에서 얻은 교훈은 탄압을 정지하고 언론자유를 인정하면 공산당은 저절로 멸망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언론을 풀어놓으면, 피비린내 나는 폭행을 어떻게 덮어 감추겠는가? 의식 방면의 속임수는 어떻게 둘러댈 것인가? 만약 탄압을 멈추게 되면, 인민은 공포와 위협이 사라지게 되어, 감히 공산당 이외의 생활방식과 신앙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공산당이 의지하고 존재하는 사회기초는 어떻게 되겠는가?

중공이 아무리 변해도 그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때문에 민중에 대한 속임수를 끝까지 유지해야 했으며, 인민에 대한 탄압도 끝까지 지속해야만 했다. ‘6.4’ 이후 ‘일체 불안정 요소를 맹아(萌芽)상태에서 소멸시키자’는 구호가 나오게 된 것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장쩌민이 얻어낸 결론이었다.

바로 이때, 중국에서는 파룬궁(法輪功)이 나타났다. 비록 초기에 파룬궁은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데 특별한 효과가 있는 기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사람들은 점차 파룬궁의 핵심이 간편하고 배우기 쉬운 5가지 공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선인(眞善忍)’을 지도사상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을 가르치는데 있음을 주목하게 되었다.


(1) 파룬궁의 ‘진(眞), 선(善), 인(忍)’과 공산당의 ‘거짓(假), 사악(惡), 투쟁(鬪)’

파룬궁은 ‘진(眞)’을 제창한다. 이는 참된 말을 하고, 진실한 일을 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줄곧 거짓말과 세뇌에 의지해 왔다. 만약 사람마다 모두 참된 말을 하게 되면, 민중들은 중국 공산당이 원래 소련에 의지하여 살인, 납치, 도주, 아편재배, 거짓 항일투쟁 등에 의해 일어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큰일을 해내지 못한다.’고 여기는 공산당은 정권을 수립한 이후에도 여러 차례 운동에서 수많은 피의 빚『血債』을 졌다. 그러므로 파룬궁이 ‘진(眞)’을 제창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그야말로 종말이 임박한 것이다.

파룬궁은 ‘선(善)’을 제창한다. 이는 매사에 항상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언제나 선하게 사람을 대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공산당은 줄곧 ‘잔혹한 투쟁과 무정(無情)한 타격’을 제창해 왔다. 중국 공산당의 모범영웅 레이펑(雷鋒)은 “적에 대해서는 엄동설한처럼 냉혹하고 무정하게 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중국 공산당은 적에게만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자기편 사람들도 잘 대해 주지 않았다. 중공의 개국(開國)원로, 원수, 국가주석을 포함하여 모두 인정사정없는 비판을 받았고, 악독하게 구타당했으며,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공산당의 ‘계급의 적’에 대한 도살은 더욱더 사람을 몸서리치게 한다. 이런 사회에서 만약 ‘선(善)’이 우세를 보이게 되면, ‘악(惡)’을 기초로 하는 폭정과 군중운동은 나타날 방법이 없을 것이다.

『공산당선언』에서는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고 했다. 이것은 공산당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대표한 것&Ag